[씨엘] 울면서 쓰는 사랑이야기, 이비엔과 라리에트 (强스포)

2022. 9. 10. 03:16국내장르

추석기념 어딘가에 썼던 글 백업하는 시리즈

2018.10.27. 작성




 


"그 날의 슬픔조차, 그 날의 괴로움조차 그 모든 것을 사랑했던 당신과 함께"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도 더 많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그후로 마음껏 숨을 쉴 수 없어요"

"잘라서 나눈 과일의 반쪽처럼 지금도 당신은 나의 빛이에요"

BGM : 요네즈 켄시, Lemon (Cover&원곡)

 

 

오타쿠들이 최애커플에 떠올리는 브금이 대체로 비슷하다지만, 정말로 이비라리 글은 레몬 외의 다른 브금을 떠올릴 수 없다ㅠㅠ

 

 



씨엘 이비라리는 내 인생관계성 중 하나고, 눈물 없이 설명하기 힘든 관계라 어떻게 영업글을 써야할지 막막하다.

그래서 이번엔 영업글이라기보단 수기를 쓴다는 생각으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보도록 할게.

이 글은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해석이야. 작가님이 어떤 의도로 이비라리 관계성을 그렸는지 나는 알 수 없으니...
이런 생각도 있구나~~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줘.

 


씨엘을 처음 접한건 1권이 나온 해였던 거 같아
아마 그 때가 2004~2005년 쯤이었는데, 백합 애니가 참 많이 나온 해지.
그때부터 본격적인 덕질을 시작해서 그런가 난 자연스럽게 백합을 메인으로 파고 있었어.
백합장르가 마이너인건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지만 그땐 덕질의 장이 커뮤니티, 티스토리, 블로그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잖아?
백합커뮤니티가 나름 활발해서 마이너란 생각도 안하고 팠던 거 같아(추억보정 들어감)
씨엘은 그림체가 예뻐서 별 생각 없이 집어든 책 중 하나였어.


 


 
근데 1권부터 이비엔과 라리에트가 너무 대놓고 사랑을 하고 있지 뭐야?
한국 만화에서 그렇게 대놓고 백합연출이 나오는게 신기했어. 그 후로 씨엘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꾸준히 구매하는 책이 되었지


 
 
 
 

 
사실 난 씨엘 후반부까지 이비엔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난 아무리해도 이비엔의 그 허무를 이해할 수 없었거든. 허무함이란 설정이 작중에서 그려지는 이비엔의 모습과 겹쳐지지 않았어. 당시의 내겐 허무도 우울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감정이었고, 이비엔은 주인공인데도 좀 멀게 느껴지는 캐릭터였어.


 


그래서 4권 이비엔과 라리에트가 패밀리어가 되는 파트를 읽으며 충격을 받았어.
이상한 말이긴 한데 이비엔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 순간의 이비엔 감정이 손에 잡힐듯 느껴졌어.
문득 이비엔 역시 자신의 허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더라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본인조차 제대로 마주한 적 없었던 허무를 서툴지만 진지하게 부딪쳐 준 건, 그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 해준 건 라리에트가 처음이었던 거야.







이비엔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비엔의 시선에서 라리에트에게 폴인럽해버렸어
라리에트를 사랑하고 나니 이비엔에게 이입하는 게 훨씬 쉽더라.





이비엔과 라리에트가 사랑싸움(...)을 하는 에피소드가 있어

라리에트는 자존심을 걸고, 이비엔을 목숨을 걸어서 라리에트가 졌다고 독백해.
이비엔의 목숨은 이비엔에겐 그다지 소중하지 않아. 오히려 이비엔이 죽는 걸 절대 원하지 않는 라리에트에게서만 그 무게를 갖지.
그러니까 저건 이비엔이 자신을 희생해서 라리에트를 이긴 게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인질로 라리에트를 협박한 거나 다름 없는 모양새라고 느꼈어.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라리에트의 마음을 이용한 거라고.


둘의 관계를 열심히 파면서도, 한편으로 둘 관계의 불균형이 항상 불안했어. 라리에트 쪽이 훨씬 감정이 무거운 것만 같았거든.
초반에 나왔던 제뉴어리의 고모 오거스틴과 사스키아의 관계처럼 이비엔과 라리에트의 관계도 언젠가 무너져버릴 것만 같더라구






그런데 반대였어. 라리에트가 이비엔을 훨씬 무겁게 아끼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이비엔에게 라리에트가 훨씬 무거웠던 거야.

이비엔은 라리에트에게 너는 네 목숨이다, 라리가 없는 삶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 다양한 고백을 했는데도 이비엔이 라리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감이 잘 안 왔거든. 이비엔이 워낙 처세술 만렙에 가볍게 립서비스 하는 이미지라 그 말의 무게들이 액면가 그대로 와닿지 않아서 그랬던 거 같아. 지나서 생각해보면 이비엔이 라리에트에게 전했던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 진심이었는데...






소중한 사람을 위해 다른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타인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도 있어. 이비엔은 전자고, 라리에트는 후자야.

이비엔은 라리가 곁에 있어주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지만...라리에트는 자신의 죽음이 이비엔에게 엄청난 슬픔과 상실이 될 걸 알아도,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 그것이 라리에트의 긍지이고 명예니까.







이비엔과 라리에트가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마지막 분기점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함께 죽으려고 했을 때인 거 생각하면 정말 눈물 뿐ㅠㅠ

이비엔은 자신의 생명도, 세상 모든 사람의 생명도 크게 중요하진 않아. 이비엔에게 중요했던 존재는 라리에트와 크로히텐이 전부야.
크로히텐이 이비엔의 사랑, 이루고 싶은 목표였다면 라리에트는 이비엔에게 삶의 이유를 주는 존재였던 거 같아.
난 이비엔이 라리에트를 사랑했기 때문에 크로히텐을 사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

올곧고 선한 라리에트의 패밀리어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비엔은 자신의 목숨을 이어갈 이유를 찾았던 거 같아.
목표와 이유는 달라. 사람은 목표가 없어도 겉으론 멀쩡하게 살 수 있어. 그렇지만 살아가는 이유가 사라지면 사람은 살 수 없어.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라리에트의 죽음 이후 이비엔을 좋아하게 되었어. 라리에트를 잃어버린 상실감 때문에 이비엔과 공감대가 생겼다고 할까...라리에트가 세계를 지키고 죽은 그 순간, 이비엔과 함께 라리에트에게 실연당한 기분이 들었거든.




그래서 이비엔은 나는 라리만 있으면 충분했다는 그 말이 너무 마음 아팠어.
라리에트를 잃기 전까지의 이비엔의 허무는 전개 상 필요한 설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라리에트를 잃은 후의 이비엔의 허무는 아플 정도로 공감이 가더라.




라리에트의 죽음 이후, 인피니티와 융합되어 버린 이비엔이 땅에 다리를 붙이지 못하고 떠다니는 것도 상징적인 연출이란 생각이 들었어. 라리에트는 이비엔의 목숨과 삶에 무게를 주는 존재였으니까..

모든 것을 잃은 이비엔이 라리에트의 말을 떠올리며 "라리...정말로 그런 날이 와?" 하는 장면 정말...정말...ㅠㅠㅠㅠ
라리도 없고 땅에 발도 붙이지 못한 채 공허한 하늘 속에 홀로 내동댕이쳐진 이비엔의 심정이 너무 잘 느껴져서 괴로웠어





이비엔에게 삶, 살아있는 것은 라리에트 그 자체라는 게 작중 곳곳에서 드러나. 라리에트는 이비엔에게 상징적인 의미로도 실제적인 의미로도 삶의 이유였고 생명이었고 미래였어.



시간을 돌린 이비엔은 아무것도 바꾸면 안된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라리에트를 구하려고 해.
그게 세계 모든 걸 등지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비엔에겐 라리에트가 더 소중했으니까.






시간이 변화를 거부하며 몇번이고 되감기는데도 이비엔은 아랑곳하지 않고 몇번이고 달려가 라리에트를 끌어안아.

이 순간 난 다음장을 넘기는 게 너무나도 무서웠어. 이비엔은 절대로 라리에트를 구하지 못할 걸 알았거든. 이비엔이 라리에트를 구한다면 그건 세계를 구한 라리에트의 의지를 죽이는 일이 되니까..






크로히텐의 계획과 라리에트의 의지로 이비엔은 세계를 지키는 신이 되어야 했어.
이비엔이 고르고 골라 사랑한 두 사람,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비엔을 사랑했던 두 사람이, 이비엔에게 가장 잔인하게 굴었다는 점이 너무 마음 아프더라. 이비엔이 크로히텐은 원망해도 라리에트는 원망하지 않았던 것도...비참할 정도로 묵직한 사랑이 느껴져서...라리에트 최애인데도 라리에트가 너무 원망스러웠어.


난 여태 라리에트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이비엔까지 저버린 고결한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라리가 이비엔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나의 의지와 함께 살아가달라는 말, 나는 이걸 라리에트가 이비엔이 자길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이용해서 세계를 지키도록 강요한 잔인한 발언이라고 생각했거든. 완벽하고 고결한 영웅이라서, 이비엔을 희생해서까지 세상을 지키려고 했던 거라고. 그래서 이비엔에겐 너무 잔인하고 매몰찼다고.


근데 이번에 정주행하면서 둘의 관계를 좀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






'그' 이비엔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네 편이고, 네 패밀리어라고 말해주던 라리에트. 이비엔이 이런 라리에트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모든 능력을 잃고, 의욕을 잃고, 사람을 수없이 죽이고,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황에서도 이비엔은 라리에트는 언제나 내 편이라 단언해. 라리가 죽은 후인데도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형이야. 이비엔은 라리에트가 죽어서도 자신의 편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어.




태어나서부터 허무한 존재였던 이비엔에게 이정도로 확신을 준 라리에트가, 과연 세계만을 위해서 이비엔을 외로운 영원 속에 처박았을까? 평생 이비엔 편이라던 라리에트가 자신의 긍지와 이타심만을 위해 이비엔을 희생했을까?

이런 의문이 드니까 이비엔이 크로히텐은 원망하면서 라리에트는 원망하지 않았던게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어

둘 다 자신의 의지로 이비엔을 신이 되도록 몰아넣은 건 똑같잖아. 크로히텐이 더 괘씸하게 느껴질 순 있어도 크로히텐은 다신 보기 싫을 정도로 원망하면서, 라리에트에겐 원망의 조각도 보이지 않는 게 신기했어.아무리 이비엔이 라리에트를 사랑했어도, 자신을 저버린 사람을 원망도 없이 끝까지 사랑하면서 그 사람 의지를 지키려는 게 가능이나 한가?

작중 누구보다 라리에트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건 이비엔이야. 그런 이비엔이 라리에트에게 사랑받은 걸 의심하지 않았다는 건...확신이 있었던 거야.

이비엔은 크로히텐이 자신을 사랑했는지 마지막에 카를라에게 물어볼 정도로, 사랑받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어. 그런데 라리에트가 자기 편이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의심조차 하지 않아. 라리에트가 자기 눈 앞에서 목숨을 끊어버린 후, 모든 게 귀찮아져서 우주가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도 라리에트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걸 의심하지 않아.

그렇다면 라리에트는 크로히텐처럼 세계를 위해 이비엔을 저버린게 아니야. 적어도 이비엔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한 거야.

난 사실 초반의 올곧지만 서툴고 이비엔에게 독점욕을 내비치던 라리에트와, 후반의 세계를 위해 이비엔 눈 앞에서 목숨을 끊는 라리에트가 일관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초반의 라리에트 묘사를 보면 얜 고결한 성품을 갖고 있지만 절대로 완벽한 사람도, 자신의 사랑을 완전히 죽일 수 있는 사람도 아냐. 라리는 그러기엔 너무 서툰 아이거든.


 
 
그렇다면 이건 정말 지독한 사랑고백이 아닌가 싶더라

여기엔 세계를 지키고 싶다는 숭고한 희생정신도 당연히 있어. 하지만 동시에 이비엔이 살아가야만 하는 영원 속에,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로 남고 싶다는 마음도 담겨 있어.

네 패밀리어여서 기쁘다, 내 날개가 되어달라는 말이 여전히 현재형인 것도 의미심장해. 라리에트는 죽음을 선택하면서도 이비엔과의 패밀리어 관계가 해소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 말은 정말 액면가 그대로, 나와 영원히 함께 살아달라는 말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초반에 라리에트가 보여줬던 이비엔을 향한 독점욕, 서툴고 약한 부분들이 후반부 라리에트와 자연스럽게 맞물리더라고. 고결하지만 잔인하고, 이타적이지만 이기적이었던 라리에트. 이런 모순적인 면까지도 자길 향한 사랑에서 나온 걸 알았다면..이비엔은 라리에트의 행동을 원망할 수가 없었을 거야. 오히려 더없이 사랑스럽게 여겼을 거 같아


23권에 다른 신 이야기가 좀 나오잖아. 난 거기 나오는 란이라는 막장 신이 인상적이었어. 얜 자기에게 소중한 존재가 없는 세계라고 대충 만들어놓고, 흥미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해.
 



난 이비엔도 충분히 란처럼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무엇보다 소중했던 라리에트가 세계를 지키겠다고 죽었으니 이비엔은 충분히 세계를 미워할 법도 하거든.






하지만 이비엔은 자긴 세계를 지켜야할 이유같은 건 없지만, 라리에트가 원했다는 이유 하나로 세계를 지키겠다고 말해.
이비엔은 라리에트와 패밀리어가 된 순간부터, 라리에트가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산다고 정했거든.


그런 라리에트가 이비엔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지와 함께 세계를 지켜주길 바랐으니까. 이비엔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함께 하고 싶어했으니까. 그 바람이 자신을 향한 사랑의 발로인 걸 이비엔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이비엔은 신으로 영원을 살면서도 라리에트의 패밀리어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거야.


23권에서 이비엔은 이렇게 독백해







이비엔은 라리에트를 분명 사랑했어. 라리에트가 없는 세상에서 라리에트의 의지를 위해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라리에트도 분명 이비엔을 사랑했어. 죽어서라도 이비엔의 영원 속에 남아 있고자 할 정도로.






이비엔이 라리에트의 의지를 이어가는 한, 이비엔은 영원히 라리에트의 패밀리어로 살아갈 수 있어.
행복이라기에는 서글프지만, 이비엔과 라리에트 두 사람만이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랑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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